백패킹 배낭 무게 줄이려면 먼저 이것부터 재세요

몇 년 전 초보 팀을 데리고 능선을 올랐는데, 출발 40분 만에 한 분이 어깨 통증 때문에 걸음을 멈췄습니다. 배낭을 열어 보니 여벌 바지 두 벌, 큰 랜턴, 접이식 삽까지 들어 있더군요. 걱정돼서 챙긴 물건들이었지만 그날 걷는 데는 오히려 짐이 됐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장비를 하나씩 사다 보니 무게는 늘고, 막상 산에서는 손도 안 대는 물건이 많았죠.
백패킹 배낭 무게는 몇 kg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걷는 거리, 물을 구할 수 있는지, 기온과 바람, 본인이 메고 걸을 수 있는 힘이 다르니까요. 대신 제가 늘 먼저 묻는 건 이겁니다. 지금 배낭에 든 물건의 무게를 각각 알고 있는가. 그걸 알아야 무엇을 빼고 무엇을 남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출발 무게와 장비 무게를 따로 재세요
배낭을 한 번 통째로 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텐트·침낭·매트·배낭처럼 매번 가져가는 장비 무게와 물·음식·연료처럼 쓰면서 줄어드는 무게를 나눠 적어 보세요. 입고 가는 옷과 신발도 따로 두면 비교가 쉬워집니다. 장비를 바꿀 때는 늘 가져가는 물건부터, 당일 보행이 걱정될 때는 출발할 때 메는 전체 무게부터 보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 장비가 8kg이고 물 2L, 음식과 연료가 합쳐 2kg이면 출발할 때는 대략 12kg입니다. 물 1L만 해도 약 1kg이니 같은 장비를 싸도 급수 계획에 따라 어깨에 걸리는 무게가 꽤 달라집니다. 숫자는 저울로 확인하세요. 제조사가 적은 무게에 팩, 폴, 수납 주머니가 빠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주방저울로 작은 물건을 재고, 다 싼 배낭은 체중계로 다시 확인합니다.
가장 무거운 네 가지부터 손보세요
제 경험상 무게가 크게 갈리는 건 배낭, 잠자리 장비, 쉘터, 취사 장비입니다. 여기서 300g을 줄이는 편이 작은 물건 열 개를 바꾸는 것보다 간단할 때가 많습니다. 다만 제일 가벼운 제품부터 사는 순서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지금 쓰는 장비를 펼쳐 놓고 실제로 쓰지 않는 기능이 뭔지 보는 게 먼저입니다.
- 배낭: 용량이 크면 빈 공간을 채우게 됩니다. 짐을 먼저 줄이고 그 부피에 맞는 배낭을 고르세요. 허리벨트와 등판이 몸에 맞는지도 무게만큼 중요합니다.
- 쉘터: 혼자 자는데 넉넉한 2인용 텐트를 계속 메고 있다면 줄일 여지가 있습니다. 대신 예상되는 바람과 비를 견딜 수 있는지, 설치에 필요한 폴과 팩까지 챙겼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 침낭과 매트: 얇게 바꾸면 숫자는 줄지만 밤새 떨 수 있습니다. 저는 침낭만 보지 않고 매트가 땅의 냉기를 얼마나 막아 주는지도 함께 봅니다.
- 취사 장비: 버너와 코펠을 여러 개 가져갈 이유가 있는지 식단부터 정하세요. 조리하지 않는 식단이라면 세척 도구와 연료도 함께 줄어듭니다.
예전에 가벼운 배낭이 탐나 두꺼운 허리벨트가 없는 제품으로 바꿨다가, 물을 많이 싣는 구간에서 어깨만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장비 자체의 무게 500g을 아끼고 착용감은 잃은 셈이죠. 가벼운 장비가 내 코스에서도 편한 장비인지는 짐을 넣고 걸어 봐야 압니다.
여벌보다 중요한 건 젖었을 때의 대책입니다
옷에서 무게를 줄일 때 초보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여벌을 전부 빼는 겁니다. 반대로 속옷부터 두꺼운 겉옷까지 하루치씩 더 챙기면 배낭이 금세 불어납니다. 저는 입고 걷는 옷, 멈췄을 때 입을 보온 옷, 비를 막을 옷을 구분합니다. 계절과 예보에 맞춰 필요한 걸 고르고, 잘 때 입을 마른 옷이나 양말은 젖지 않게 따로 넣습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없었는데 능선에서 바람과 비를 함께 맞은 날이 있습니다. 젖은 옷을 갈아입을 방법도, 몸을 덥힐 옷도 없었다면 그 밤은 꽤 위험했을 겁니다. 비상 보온, 조명, 응급 처치 물품까지 무작정 빼서 맞춘 숫자는 자랑할 만한 무게가 아닙니다. 헤드랜턴 배터리와 보조 전원도 출발 전 확인합니다. 짐을 줄일수록 남겨 둔 물건이 제 역할을 하는지 더 꼼꼼히 봐야 합니다.
물과 음식은 코스에 맞춰 계산하세요
물은 무거워서 줄이고 싶지만, 지도에 표시된 계곡만 믿고 적게 담으면 곤란합니다. 계절에 따라 마르거나 접근이 어려울 수 있거든요. 출발 전 이용 가능한 급수 지점을 확인하고, 확인이 안 되는 구간은 필요한 만큼 직접 메는 쪽으로 계획합니다. 정수 도구를 가져가더라도 그 도구를 쓸 물이 실제로 있어야 합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하루치 식사를 봉투별로 나눈 뒤 걷는 중 먹을 간식까지 넣어 무게를 잽니다. 예전에는 혹시 몰라 챙긴 식량이 매번 남아 집에 돌아왔습니다. 몇 번 다녀오며 실제로 먹은 양을 기록하니 준비가 한결 쉬워졌죠. 다만 일정이 밀리거나 날씨 때문에 하루 더 머물 가능성이 있는 코스라면 여유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가벼운 배낭보다 무사히 내려오는 게 먼저입니다.
처음부터 장비를 몽땅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 산행 전 바닥에 전부 펼쳐 놓고, 지난번에 쓰지 않은 물건과 없어서 아쉬웠던 물건을 각각 적어 보세요. 그런 다음 한두 가지만 바꿔 같은 거리에서 걸어 보면 차이가 보입니다. 제 배낭도 그렇게 줄었습니다. 오래 걸어도 저녁에 밥 지을 힘이 남는 무게, 저는 그 정도가 가장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