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 처음 시작하려면 이렇게 짐부터 줄이면 됩니다

처음부터 멀리 가면 장비보다 사람이 먼저 지칩니다
얼마 전 초보 백패킹 팀을 데리고 1박 코스를 다녀왔는데, 배낭 무게가 제일 무거운 분이 가장 비싼 장비를 들고 왔습니다. 텐트도 좋고 침낭도 좋고 버너도 최신형이었는데, 40분쯤 오르니 말수가 줄더군요. 백패킹은 장비 자랑이 아니라 내 몸으로 짐을 옮기는 캠핑입니다. 이걸 잊으면 첫날부터 재미가 없어집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10km 넘는 능선 코스보다 편도 2~4km 정도, 고도 차가 크지 않은 곳이 낫습니다. 배낭은 체중의 20~25%를 넘기지 않는 쪽으로 잡습니다. 체중 70kg이면 14~17kg 안쪽이죠. 그런데 초보가 물과 식량까지 넣고 15kg 아래로 맞추는 게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장비를 사기 전에 먼저 코스를 낮춰 잡는 게 맞습니다.
저도 예전엔 20kg 넘게 메고 다녔습니다. 그땐 뿌듯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릎한테 못 할 짓을 했습니다. 무거운 배낭은 어깨만 아픈 게 아닙니다. 내리막에서 발목이 밀리고, 허리가 접히고, 판단도 느려집니다. 백패킹에서 피로는 안전 문제로 바로 이어집니다.
백패킹 장비는 비싼 순서가 아니라 잠자리부터 맞춥니다
처음 장비를 살 때 제일 많이 하는 실수가 의자, 테이블, 랜턴 같은 눈에 보이는 물건부터 고르는 겁니다. 물론 있으면 좋습니다. 근데 백패킹에서 먼저 챙길 건 잠자리입니다. 텐트, 매트, 침낭 이 세 가지가 밤을 버티게 해줍니다.
텐트는 무게와 설치 난이도를 같이 봅니다
1인용 텐트는 보통 1.2~1.8kg 사이가 많이 쓰입니다. 2kg을 넘기면 가격은 싸도 들고 다닐 때 차이가 큽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초경량으로 가면 천이 얇고 내부가 좁아 처음 쓰는 사람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첫 텐트라면 1.5kg 전후, 자립 또는 반자립 구조를 권합니다. 바람 부는 날 비자립 텐트를 처음 치면 팩 박는 순서부터 꼬입니다.
침낭은 계절을 속이면 바로 티가 납니다
침낭 스펙을 볼 때는 최저사용온도만 보면 안 됩니다. 실제로 편하게 잘 수 있는 온도는 그보다 높게 잡아야 합니다. 봄가을 산에서는 밤 기온이 5도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흔합니다. 3계절용이라도 내가 추위를 많이 타면 보온 의류를 같이 계산해야 합니다. 여름용 침낭 하나로 봄가을까지 버티려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덜덜 떠는 사람 많이 봤습니다.
매트는 가볍다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매트는 바닥 냉기와 등을 동시에 막아줍니다. 공기 주입식은 작고 편하지만 펑크 위험이 있고, 발포 매트는 부피가 크지만 고장 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초보라면 처음부터 비싼 에어매트 하나만 믿기보다, 계절과 바닥 상태를 생각해서 고르는 게 낫습니다. 특히 초봄이나 늦가을에는 바닥 냉기가 생각보다 세게 올라옵니다.
배낭 싸는 방법만 바꿔도 걷는 맛이 달라집니다
백패킹 배낭은 대충 빈 데 넣는 가방이 아닙니다. 무게 중심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같은 13kg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무거운 물건은 등 가까이, 배낭 중간 높이에 둡니다. 침낭처럼 가볍고 부피 큰 건 아래쪽에 넣고, 자주 꺼낼 우비나 간식, 헤드랜턴은 위나 외부 포켓에 둡니다.
- 아래쪽: 침낭, 여벌 옷, 부피 크고 가벼운 물건
- 등 가까운 중간: 식량, 버너, 물 일부, 무거운 장비
- 위쪽: 방수 재킷, 보온 의류, 비상식, 헤드랜턴
- 외부 포켓: 지도, 휴지, 장갑, 쓰레기봉투, 간식
물은 무조건 많이 들고 가면 든든해 보이지만, 1L가 1kg입니다. 코스에 물 보급 지점이 확실하면 필요한 만큼만 들고 가는 게 낫습니다. 다만 초보는 보급 지점을 너무 믿으면 안 됩니다. 계곡이 말랐거나 약수터가 끊긴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처음 가는 곳이면 출발 전 물 정보와 최근 후기를 꼭 확인하고, 최소 1.5~2L는 기본으로 잡습니다.
음식도 욕심이 잘 생깁니다. 삼겹살, 전골, 과일, 캔맥주까지 챙기면 산 위 식탁은 풍성한데 다음 날 무릎이 울 수 있습니다. 첫 백패킹은 즉석밥, 건조식, 라면, 견과류 정도로 단순하게 가도 충분합니다. 산에서 먹으면 웬만한 건 다 맛있습니다.
초보가 놓치기 쉬운 안전 문제는 대부분 출발 전에 보입니다
백패킹 사고는 대단한 암벽에서만 나는 게 아닙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못 도착해서 급하게 움직이다 넘어지고, 비 예보를 대충 보고 갔다가 체온이 떨어지고, 바람길에 텐트를 쳤다가 밤새 잠을 못 잡니다. 저는 초보 팀을 데려갈 때 출발 시간부터 빡빡하게 잡지 않습니다. 오후 4시 전에 사이트를 잡는 걸 기준으로 둡니다.
날씨는 기온만 보면 부족합니다. 풍속과 강수 확률, 체감온도를 같이 봐야 합니다. 바람 초속 7~8m만 돼도 텐트 설치가 꽤 귀찮아지고, 능선에서는 몸이 확 식습니다. 비가 올 때 면 티셔츠와 청바지는 최악에 가깝습니다. 젖으면 마르지 않고 체온을 뺏습니다. 얇은 기능성 옷을 겹쳐 입는 게 훨씬 낫습니다.
- 헤드랜턴은 손전등보다 먼저 챙깁니다. 양손이 비어야 합니다.
- 보조배터리는 휴대폰 배터리의 1.5~2회 충전 정도면 초보 1박에 충분합니다.
- 구급품은 거창할 필요 없지만 밴드, 소독티슈, 진통제, 테이프는 챙깁니다.
- 쓰레기봉투는 여분까지 가져갑니다. 젖은 장비를 임시로 담을 때도 씁니다.
그리고 텐트 칠 자리는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물길, 죽은 나뭇가지 아래, 바람이 정면으로 때리는 능선 끝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바닥이 살짝 높은 곳, 배수가 되는 곳, 주변 사람들과 너무 붙지 않는 곳이 편합니다. 캠핑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설만 보고 가면 진입로가 험하거나 밤새 차량 소음이 심해서 고생할 수 있습니다.
첫 백패킹 예산은 욕심을 빼면 훨씬 현실적입니다
처음부터 전부 새 장비로 맞추면 100만 원은 금방 넘어갑니다. 그런데 실제로 한두 번 다녀보면 내 스타일이 보입니다. 잠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음식에 힘을 주는 사람, 사진 장비를 꼭 가져가는 사람, 걷는 거리를 길게 잡는 사람. 스타일이 다르면 돈을 써야 할 곳도 다릅니다.
예산을 나눈다면 저는 텐트와 침낭, 매트에는 어느 정도 투자하고, 조리도구와 소품은 천천히 맞추겠습니다. 배낭은 몸에 맞는 게 중요하니 가능하면 매장에서 메보고 고르는 편이 좋습니다. 같은 50L라도 허리벨트가 맞지 않으면 어깨로 무게가 다 올라옵니다. 반대로 몸에 잘 맞는 배낭은 조금 무거워도 훨씬 버틸 만합니다.
- 우선 투자: 텐트, 침낭, 매트, 배낭, 방수 재킷
- 천천히 구매: 의자, 테이블, 감성 랜턴, 커피 장비
- 빌려도 되는 것: 버너, 코펠, 보조 랜턴, 일부 소품
- 굳이 안 사도 되는 것: 큰 도끼, 무거운 주철 팬, 과한 장식품
중고 장비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텐트는 폴 휨, 심실링 상태, 바닥 코팅 끈적임을 봐야 하고, 에어매트는 공기 빠짐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침낭은 보관 상태가 중요합니다. 압축한 채 오래 둔 다운 침낭은 복원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백패킹은 가볍게 시작할수록 오래 갑니다
처음 1박은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가까운 곳, 짧은 거리, 단순한 식사, 확실한 날씨. 이 네 가지만 맞춰도 꽤 괜찮은 밤을 보낼 수 있습니다. 산 위에서 커피 한 잔 마시겠다고 장비를 다 챙기는 것도 좋지만, 내려올 때 웃으면서 내려오는 게 더 중요합니다.
저는 아직도 출발 전날 배낭을 한 번 더 엽니다. 안 써도 될 물건이 꼭 하나씩 들어 있거든요. 그걸 빼는 습관이 백패킹을 오래 하게 만듭니다. 좋은 장비는 많지만, 내 체력과 코스에 맞는 장비가 결국 제일 오래 남습니다. 처음엔 남들 배낭보다 내 어깨 말을 더 믿는 편이 낫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