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 장비 고르는 방법, 초보가 돈 덜 버리려면 이렇게 시작하세요

얼마 전 첫 백패킹을 준비한다는 분 배낭을 같이 봐드렸는데, 65리터 배낭 안에 안 써도 되는 물건이 절반 가까이 들어 있었습니다. 의자 두 개, 두꺼운 코펠 세트, 랜턴 세 개, 보조배터리 두 개. 본인은 안전하게 챙긴다고 넣은 건데, 막상 산길 2km만 올라가도 어깨가 먼저 항의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백패킹 장비를 하나씩 사 모았고, 몇 번 안 쓰고 창고에 들어간 장비가 꽤 됩니다. 지금은 기준이 단순합니다. 내가 가는 산, 내 체력, 내 잠버릇, 내 밥 스타일에 맞는가. 이 네 가지가 안 맞으면 비싼 장비도 짐입니다.
처음엔 풀세트보다 1박 기준으로 맞추는 게 낫습니다
백패킹 장비를 처음 살 때 제일 흔한 실수가 ‘언젠가 필요하겠지’입니다. 그런데 그 언젠가는 생각보다 잘 안 옵니다. 초보라면 먼저 봄, 가을 1박을 기준으로 잡는 게 현실적입니다. 영하권 설산, 장거리 종주, 우중 캠핑까지 한 번에 대비하려고 하면 장비값도 올라가고 무게도 확 늘어납니다.
제가 초보에게 권하는 기본 무게는 물과 식량을 빼고 8~10kg 정도입니다. 여기에 물 1.5~2리터, 식량, 연료를 넣으면 실제 출발 무게가 11~13kg쯤 됩니다. 평소 등산을 자주 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도 꽤 묵직합니다. 15kg 넘어가면 풍경 보는 시간보다 어깨끈 고쳐 메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 텐트 또는 쉘터: 1.2~1.8kg 사이면 초보가 다루기 무난합니다.
- 배낭: 50~60리터면 1박 백패킹에 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
- 침낭: 봄가을 기준 컴포트 온도 0~5도 정도를 먼저 봅니다.
- 매트: R값 3 전후면 3계절용으로 쓰기 좋습니다.
- 취사 장비: 버너, 가스, 작은 코펠 하나면 대부분 해결됩니다.
처음부터 초경량만 좇을 필요는 없습니다. 가벼운 장비는 좋지만, 가격이 크게 뛰고 내구성이나 사용 편의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텐트 설치가 서툰 상태에서 너무 예민한 소재를 쓰면 바람 부는 날 스트레스가 커집니다.
배낭은 용량보다 내 몸에 맞는지가 먼저입니다
백패킹 장비 중에서 실패하면 제일 괴로운 게 배낭입니다. 텐트가 조금 무거운 건 쉬면서 버틸 수 있는데, 배낭이 몸에 안 맞으면 출발 30분 만에 목과 허리가 굳습니다. 매장에서 봤을 때 멋있는 배낭이 실제 산에서는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배낭은 리터보다 등판 길이와 허리벨트를 먼저 봐야 합니다. 무게는 어깨가 아니라 골반에 실려야 합니다. 허리벨트를 조였을 때 배낭 무게의 60~70%가 골반 쪽으로 내려오면 오래 걸어도 훨씬 낫습니다. 어깨끈만 당겨서 메는 습관이 있으면 아무리 좋은 배낭도 고생합니다.
50리터와 65리터 중 고민된다면
장비가 아직 크고 무겁다면 60리터 전후가 편합니다. 대신 공간이 남는다고 다 채우면 안 됩니다. 장비를 어느 정도 줄일 계획이 있고 1박 위주라면 50~55리터도 충분합니다. 저는 계절 좋은 날 1박이면 45리터 배낭도 씁니다. 다만 초보에게 무조건 작은 배낭을 권하진 않습니다. 작은 배낭에 억지로 쑤셔 넣으면 패킹이 망가지고, 바깥에 매단 장비가 나뭇가지에 걸립니다.
중고로 사도 괜찮은 장비가 배낭입니다. 단, 허리벨트 쿠션이 꺼졌는지, 버클이 깨졌는지, 지퍼가 씹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땀 냄새가 심하게 밴 배낭도 은근히 오래 갑니다. 싸다고 덥석 사면 집에 와서 후회합니다.
텐트와 침낭은 계절을 욕심내면 돈이 많이 듭니다
텐트는 자립식과 비자립식에서 많이 고민합니다. 초보라면 자립식이 편합니다. 데크, 흙바닥, 자갈 섞인 사이트에서 설치가 쉽고, 위치를 조금 옮기기도 좋습니다. 비자립식은 가볍고 수납이 작지만 팩다운이 제대로 안 되면 모양이 무너집니다. 바람 부는 능선에서는 설치 실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1인용 텐트는 1.5kg 안팎이면 무난하고, 2kg을 넘으면 백패킹에서는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가격이 낮고 튼튼한 모델은 2kg 가까이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인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짧은 거리로 다닐 거라면 무리해서 80만 원대 텐트로 시작할 필요 없습니다. 20만~40만 원대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장비가 있습니다.
침낭은 더 조심해야 합니다. 판매 문구에 적힌 ‘영하 10도 사용 가능’ 같은 표현만 보면 안 됩니다. 실제로 봐야 할 건 컴포트 온도입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컴포트 5도 침낭으로 5도 밤을 버티기 어렵습니다. 옷을 껴입고 핫팩을 넣어도 새벽 3시에 잠이 깨면 다음 날 산행이 망가집니다.
다운과 합성솜 선택
다운 침낭은 가볍고 작게 접힙니다. 대신 젖으면 성능이 크게 떨어지고 가격이 높습니다. 합성솜 침낭은 부피가 크고 무겁지만 습기에 조금 더 강하고 가격 부담이 적습니다. 저는 입문자에게 봄가을용 합성솜이나 보급형 다운을 먼저 써보라고 말합니다. 겨울까지 한 방에 해결하려고 두꺼운 침낭을 사면 여름과 초가을엔 땀에 절어서 못 씁니다.
취사 장비는 작게 시작해도 밥은 잘 먹습니다
캠핑을 오래 한 분일수록 백패킹에서 취사 장비를 줄이는 게 어렵습니다. 오토캠핑 습관이 남아 있으면 프라이팬, 냄비, 컵, 집게, 칼, 도마가 다 따라옵니다. 그런데 등에 지고 가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1박이면 작은 코펠 하나, 스토브 하나, 수저 하나, 컵 하나로 거의 됩니다.
처음엔 라면, 즉석밥, 동결건조식, 커피 정도로 식단을 짜는 게 편합니다.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이는 건 가능하지만 기름 처리와 냄새, 쓰레기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 바람 부는 날 데크 위에서 기름 튀면 뒷사람에게 민폐가 됩니다. 백패킹은 먹는 재미도 있지만, 흔적을 덜 남기는 쪽이 오래 다니기 좋습니다.
- 버너는 70~100g대 소형 스토브면 1인 취사에 충분합니다.
- 가스는 110g 이소가스 하나로 1박 간단 취사가 대체로 가능합니다.
- 코펠은 750ml~1L 정도면 라면과 물 끓이기에 알맞습니다.
- 바람막이는 화력보다 연료 절약에 차이가 큽니다.
비싼 티타늄 장비도 좋지만 처음부터 전부 티타늄으로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티타늄 컵에 밥을 오래 끓이면 눌어붙기 쉽고, 얇은 냄비는 조리감이 까다롭습니다. 물 끓이는 용도라면 좋고, 요리를 자주 할 거면 알루미늄 코펠이 더 편할 때도 많습니다.
초보가 놓치기 쉬운 안전 장비가 진짜 기본입니다
장비 이야기하면 텐트와 침낭에 돈을 다 쓰고, 정작 안전 장비는 대충 넘어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산에서는 작은 불편이 사고로 커집니다. 헤드랜턴 배터리가 없어서 휴대폰 불빛으로 하산한 사람도 봤고, 비 예보를 가볍게 봤다가 저체온 직전까지 간 경우도 봤습니다.
헤드랜턴은 손전등보다 먼저입니다. 양손이 자유로워야 넘어졌을 때 몸을 짚을 수 있습니다. 보조 배터리는 용량만 보지 말고 추운 날 성능 저하도 생각해야 합니다. 비상용 은박 담요, 작은 구급 파우치, 여분 양말, 방수 재킷은 무게 대비 가치가 큽니다.
물도 장비입니다. 초보는 물을 적게 가져가거나 너무 많이 가져갑니다. 가는 길에 물을 보급할 수 없다면 1박 기준 최소 1.5리터, 더운 날이나 조리까지 생각하면 2리터 이상이 필요합니다. 물 1리터는 1kg입니다. 그래서 코스에 약수터가 있는지, 실제로 물이 나오는지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지도에 표시돼 있어도 가뭄 때는 말라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백패킹 장비는 빼면서 자기 스타일이 보입니다
처음 장비를 살 때는 ‘뭘 더 사야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몇 번 다녀오면 반대로 ‘뭘 안 가져가도 되나’가 보입니다. 이때부터 짐이 줄고 산행이 편해집니다. 저는 다녀온 뒤 배낭을 풀면서 안 쓴 물건을 따로 빼놓습니다. 세 번 연속 안 썼으면 다음 산행에서는 거의 제외합니다. 단, 구급품과 방한 장비처럼 안 쓰는 게 좋은 장비는 예외입니다.
백패킹 장비는 남의 리스트를 그대로 베끼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잠을 예민하게 자는 사람은 매트에 돈을 더 쓰는 게 맞고, 먹는 게 중요한 사람은 취사 장비를 조금 챙기는 게 맞습니다. 사진보다 걷는 걸 좋아하면 무게를 줄여야 합니다. 저는 요즘 의자도 잘 안 가져갑니다. 대신 얇은 폼 패드 조각 하나 챙겨 바위나 데크에 깔고 앉습니다. 불편해 보여도 제 스타일엔 그게 맞습니다.
좋은 백패킹 장비는 남에게 자랑하기 좋은 물건이 아니라, 집에 돌아왔을 때 다음에도 또 들고 가고 싶은 물건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맞출 생각은 내려놓는 게 낫습니다. 한 번 다녀오고, 하나 빼고, 하나 바꾸고, 그렇게 자기 배낭이 만들어집니다. 오래 다녀보니 장비 욕심보다 몸이 덜 지치는 구성이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
